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가몬 왕국 (문단 편집) === 전성기 === [[파일:터키 갈라티아 4.png|width=760]] 기원전 188년 아파메아 평화 협정으로 로마의 동맹인 페르가몬, 로도스 왕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아나톨리아 [[아탈로스 1세]] 소테르(BCE 241~BCE 197)는 페르가몬으로부터 공물을 갈취해가는데 맛을 들인 [[갈라티아]]를 중요한 전투에서 격파함으로써 구원자라는 칭호를 얻었다. 그는 [[셀레우코스 제국]]을 공격하여 [[에게 해]] 연안과 소아시아 내륙의 일부 영토를 획득했으며, [[마케도니아 왕국|마케도니아]] [[필리포스 5세]]와도 싸웠다. 마케도니와의 전쟁은 만만치 않아 처음에는 페르가몬 왕국도 잘 싸웠으나 결국에는 필리포스 5세의 군세에 페르가몬은 압도당하여 한때는 페르가몬이 마케도니아군에게 포위당한 적도 있었다. 나중에 밝혀진 일인데, 필리포스 5세의 대담한 작전은 사실 셀레우코스 제국의 [[안티오코스 3세]]와 밀약을 맺고 서로 후방을 보호해주기로 했으며, 나아가 두 명의 팽창주의 군주가 페르가몬과 이집트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던 것이었다. 이를 알게 된 페르가몬은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. 처음에 로마는 미온적이었으나,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과 확실한 우호 동맹을 맺게 되었다. 이후 페르가몬 왕국은 로마의 충실한 동맹으로 남게 된다. BCE 197년 [[키노스케팔라이 전투]]에서 필리포스 5세가 패배함으로써 페르가몬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. 필리포스 5세의 패배를 확인한 아탈로스 1세는 바로 급한 근심은 덜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듬해 편안히 눈을 감았다. 그 뒤를 이은 사람은 그의 장남인 [[에우메네스 2세]](BCE 197~BCE 160)였다. 마케도니아 왕국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졌으나 아직 셀레우코스 제국이 팽창주의 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어 큰 위협은 항상 존재했다. 페르가몬은 다시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하여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. 그리고 BCE 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안티오코스 3세에게 대승을 거두자 페르가몬은 마침내 한숨 돌릴 수 있었다. 에우메네스 2세의 치세에 그리 큰 특징은 없었으나 이 [[마그네시아 전투]]의 결과로 페르가몬은 아직 이 지역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던 로마에게서 타우루스 산맥 서쪽의 아나톨리아 반도를 모두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. 그들은 이제 셀레우코스 제국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한 국력을 갖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. 에우메네스 2세는 이 지방을 탈환하기 위해 BCE 182년에 재차 침공해 온 셀레우코스 제국군을 물리치고 왕국을 잘 유지시킨 뒤, 그의 동생인 [[아탈로스 2세]]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